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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심 幻心
2023. 5. 17. 21:31w. @rurutlee
최근 자비엘이 관리하는 컬렉션에 포르말린 용액에 침수되어있는 심장이 하나 늘었다. 그는 본디 포르말린 액상 박제보단 털 많은 동물들의 가죽을 본에 씌우는 일이 주된 업무였으나, 어째서 이런 표본이 늘어났는지는 본인도 영문 모른 채 기분만 나쁠 따름이었다. 직접 표본 통에 포르말린 용액을 넣어 박제한 건 자신이고, 용액 중에 둥둥 떠다니는 식어버린 심장만이 현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녹티스의 심장이다.
배가 열려있던 녹티스가 ‘이왕 만들어둔 김에, 자비가 사용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부탁하며 꺼낸 것이었다. 그 녀석은 자신의 흥미가 꽂힌 곳은 철저하게 구현하기 때문에, 횡격막 위의 폐나 심장까지 만들어두었다가 내심 관심을 두지 않아 아쉬웠는지 직접 심장을 뜯었다. 분명히 자비엘을 놀리기 위함이었다. 무의식적으로 숨을 내쉬어버리게 될 정도로 따뜻한 자신의 심장을, 헌상했다.
악마와 연루될수록 망가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도, 자비엘은 이 관계를 끝장내지 못했었다. 하기야, 이런 일방적으로 기생당하는 관계를 이어가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혼자서 손을 써 청산할 수 있는 관계였다면 자비엘은 무엇이라도 바칠 수 있었을 테다. 단순히 끊어내기엔 이미 인간으로선 커버가 불가능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당연하지만, 자비엘은 그 부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건드리면 귀찮은 일이 될 것이 뻔하기에 처음엔 다시 집어넣으라고 조용히 꾸짖었다.
그러나, 머리 꼭대기에서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게 마음에 들었던 악마의 예상대로 그걸 그저 모르는 체할 수는 없었다. 외부로 끄집어져 드러난 싱싱한 심장은 어째서인지 유혹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녹티스가 들고 있는 심장을 가로채서, 연결된 것을 손수 끊어내고, 그 박동이 멈추며 고여있던 피가 아래로 왈칵 흘러내리는 것을 직접 지켜봤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녹티스는 그것이 자신에게서 분리되던 순간에 몸을 비틀며 피를 토해냈었다. 자비엘은 그가 인간을 흉내 낸다는 게 역겨워 속이 빈 악마의 몸뚱이를 저버린 채 그걸 포르말린에 절이러 갔다.
하지만 지금,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심장은 생기를 잃고 거무죽죽한 근육이 되어있었다. 단순한 심근이 되어가는 걸 보고 있자니, 대체 자신은 무엇을 위해 대량의 용액을 사용하며 고정하려 했는지 후회한다. 자비엘이 바랐던 건 이런 힘 없는 근육 조각이 아닌, 녹티스가 손에 들고 있었던, 화사하고 아름답게 핀 생명의 증거였다. 그것에서 피가 몇 움큼이나 흩어지는 걸 영원히 지켜보고 싶었다고 한순간 생각했었다.
“뭘 기대한 거야, 자기?”
부르지도 않은 녹티스가 튀어나와 심기를 건드린다. 정작 심장의 주인이었던 자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실제 본인의 장기가 아니라 단순히 인간을 모방했으니 마땅히 그래야만 했으나, 순간적인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것’에 연연한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치밀어올랐다.
“당신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시들지 않는 영원불멸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면 닮는다던데♡”
“당신과 비슷한 걸 보려고 한 제 잘못입니다.”
자비엘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자신에게도, 저놈에게도 멸시받는 기분이었다. 한순간의 욕망에 패배해 치욕을 맛본 것에도 모자라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나 지껄이다니……. 하지만, 녹티스는 자신이 한 말에, 그가 진심으로 역겨워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기껏해야 뽑아낸 걸 조금 주무르고 버리고 마리라 생각했는데, 고질적인 직업병인지 그걸 영구히 박제하려고 시도할 줄이야……. 흘러넘치는 생기를 손에 쥐었다가, 그걸 보는 눈앞에서 몽땅 잃어버린 자의 기분은 이렇게나 맛있구나아. 헤집으니 그대로 더러워지는 게, 즐겁다고 해야 할까. 녹티스가 자신에게 물들어버린 인간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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