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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위한 키튼 사료
2024. 8. 23. 14:31w. hakano(@ayakashiphobia)
인생이라는 것은 우연의 연속이고, 오해라는 것은 수많은 우연이 겹치며 생겨나는 것이다. 겹겹이 쌓인 일들은 하나하나가 자립적으로 하나의 망을 이루어, 어떤 식으로든 특정한 결과를 불러오게 된다. ……같은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던 것 같다. 그 문장을 떠올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익숙한 모양새를 한 것이 자신을 향해 조용조용히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였다. 살갑게 귀여운 목소리로 울고 있던 검은 고양이.
자비엘은 제 종아리 부근에 몸을 비비적대는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이마 부근에만 흰 털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고양이는 몇 번인가 자신이 밥을 챙겨준 전적이 있는 개체로 추정되었다. 원체 검은 옷이라 검은 고양이의 털이 묻어도 그다지 티가 나지 않았다. 나름대로 자신에게 애착이라도 생긴 걸까.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하며 자비엘은 고양이의 엉덩이를 툭툭 쳐 주었다. 꼬리가 꼿꼿하게 선 걸 보면 고양이도 그렇게 나쁜 기분은 아닌 듯했다.
정해진 집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바깥 생활이 고되게 느껴지는 것은 비단 인간뿐이 아닐 것이다. 자비엘은 그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고양이가 가끔 보일 때면 밥을 주었다. 그렇다 하여 무언가 커다란 이상을 가지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 것은 아니었지만. 캔의 따개를 열어, 생선 통조림 특유의 기름을 한 번 흐르는 물에 씻어내는 과정은 번거롭긴 해도 귀찮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비, ……그런 취향인 건 알고 있긴 했지만.”
정말로 번거로운데다 귀찮은 것은 여기 따로 있었다. 귀가하자마자 본 것은, 녹티스가 소파 위에 길게 자리를 차지하고는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오늘도 막 마주한 사이에서의 예의를 차린 인사라기보다는 영문도 모를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귀가하자마자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죽은 눈으로 녹티스를 바라보는 자비엘은 정말로 피곤에 절여진 듯했다. 그러나 녹티스가 평소에 마주하는 자비엘은 언제나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어서, 녹티스는 별다른 위화감을 느끼지 못한 채 자비엘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면, 볕을 지나치게 받은 화초처럼, 자비엘은 실시간으로 원치 않게 떠맡겨진 반려 악마를 흐물흐물한 시선으로 마주 보았다. 녹티스는 그와 완전히 상반되게 히죽거리는 웃음을 걸친 채라서, 자비엘은 그가 또 무언가 꾸미는 것이 있구나, 그런 비극을 경험에 기반하여 어느 정도 예지할 수 있었다.
“다 봤단 말이야. 마당에서.”
“마당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가 나와서, 자비엘은 저도 모르게 상대의 말을 따라 말했다. 마당이라고 하면 제가 직전까지 서 있던 부지를 말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마당에서 한 것이라고 해봐야, 기껏해야 고양이를 본 것뿐인데…….
“때렸잖아. 고양이.”
“……네?”
사람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바보 같은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자비엘은 실감했다.
“제가 그럴……사람으로 보이는 겁니까.”
“아니, 그런데 때리는 장면을 봐 버린 이상 거짓말을 할 수는 없잖아?”
평소 거짓말을 잦은 빈도로 내뱉는 악마가 할 말은 아니었다. 더하여 녹티스가 무엇을 오해한 것인지를 알 것 같았다. 조금 아찔한 기분이 느껴지긴 했지만 이 정도면 그렇게까지 질이 나쁜 어투가 아니라고 곱씹으며, 자비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때리는 게……, 학대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
이번에는 녹티스가 아까의 대화를 복습한다.
“고양이들은 원래 신경이 몰린 탓에 엉덩이를 두들겨 주는 걸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고양이들은 전부 마조히스트야?”
“개체별로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은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녹티스의 헛소리를 무시하며 자비엘은 설명을 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신도 고양잇과 동물의 외형을 하고 있었죠.”
“난 마조히스트가 아닌데?”
“네. ……당신도 엉덩이를 쳐 주면 좋아합니까?”
다시 한번 녹티스의 말을 막듯이 대답했다. 뒷말은, 동물을 접하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이라고 할까, 스몰 토크에 가까운 말이었는데.
“글쎄. 악마의 엉덩이를 때리는 인간 같은 거,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우니깐 말이야.”
“……그런데 왜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저를 빤히 쳐다보는 건가요.”
어느새 본연의 짐승의 모습을 한 녹티스가, 자비엘의 앞에 앉아 있었다. 대화의 흐름을 떠올리면, 설마 이 악마는 지금 나에게 제 엉덩이를 팡팡 두들기라고 종용하고 있는 건가……? 자비엘의 낯빛이 대번에 나빠졌다. 정말로 하는 수 없이 자비엘은 녹티스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누가 보아도 하기 싫은 티가 역력히 났다…….
“몸이 단단하니까, 세게 치지 않으면 기별도 안 와.”
“…….”
있는 힘껏 제 앞의 짐승의 엉덩이를 때리며, 자비엘은 스스로에 대한 측은지심을 느꼈다. 그 감정이 사라지기도 전에, 녹티스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응, 더 세게 때려줘. 흐으……♡”
“………….”
……터졌다고 할까, 어딜 봐도 과도한 연기의 산물이었다. 자비엘의 침묵은 짐승의 교성(이라기보다, 연기에 가까운 그것) 아래에서 지금이라도 도망쳐 외출을 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 생각을 읽은 듯이, 녹티스는 의미 없는 신음을 그만두었다.
“이제 됐어.”
그리고는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자비엘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뜩이나 창백한 피부는 더 핏기가 가셔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장 어디에라도 신고를 했을 법한 형상이었다. 그러나 제 옆에 있는 것은 지극히 상식에서 벗어난 존재다. 잠깐 자비엘을 보는 것으로, 편두통이 조금 있을 뿐 평소와 건강 상태가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간단했다.
“있잖아, 자기. 이 모습을 할 때도 이렇게 때려주면 안 돼?”
그냥 신음을 더 내라고 할 걸 그랬다. 자비엘은 후회했으나, 본래 소중한 것은 잃어버린 다음에야 그 가치를 깨닫는 법이다.
“애초에 당신, 그다지 기분 좋아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하지만 자비가 때려주는 건 엄청 기분 좋았어.”
“오해를 살만한 표현은 좀 그만…….”
혼란스러운 나머지, 자비엘은 자신의 말도 만만치 않게 오해를 당할만한 표현임을 인지하지 못했다. 허나 그것을 구태여 지적하지 않고, 녹티스는 다만 자비엘의 옷자락을 슬쩍 잡더니 얼굴을 가까이 하였다.
“자비에게서 다른 고양이의 냄새가 나잖아!”
“아니……, 당신은 고양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응. 언젠가 이런 식으로 싸우는 인간 부부를 본 적이 있어서, 따라 해 보고 싶었어.”
“하…….”
깊게 한숨짓는 자비엘에게는 이제 딴죽을 걸 힘조차 없었다. 녹티스의 주절거림을 자장가 삼아 잠들며 자비엘은 생각했다. 동물을 기르는 건, 정말로 힘든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